크리드. 사실 전 크리드 브랜드를 그렇게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마케팅에 비해서 좀 실속없는 향? 이랄지, 그 돈 다 주고 사기는 아까운 향? 그런 느낌이라서... 하지만 어벤투스는 좋아합니다ㅇㅇ 오빠한테 뿌려주고 싶은 향 몇 가지들 중 하나로 꼽죠. 그래서 제가 크리드를 못 버림...
아무튼 오늘 시향기 쓰는 3종 세트들은 모두 조향사 Olivier Creed의 작품입니다.(이 중 어벤투스는 그 아랫 세대인 Erwin Creed와 함께 작업했다고 합니다) 그럼 이 (자기네들 마케팅에 따르면)역사 깊은 크리드 가문의 향수에 피도 안 마른 제 코를 들이대볼까요. 킁킁킁...

이미지 출처: www.fragrantica.com
어벤투스
맨 처음 타자는 어벤투스입니다. 바틀을 보면 금속 느낌의 까만색이 굉장히... 정장 차려입은 남자 느낌을 줍니다. 전통적인 영국 젠틀맨보다는 뉴욕의 비지니스맨에 더 가까워보이네요. 과연 그럼 향도 비지니스맨의 향취가 느껴지느냐면...
탑노트는, 저번에도 말했지만, 굉장히 싱그러워요. 상큼상큼해서 부담이 없습니다. 비유를 재탕하자면 아빠와 오빠 사이에서 골랐을 때 아무 망설임 없이 오빠. 시트러스하면서 상큼한 것이 매우 젊은 향이에요. 가볍게 산뜻한 시트러스 좋아하시는 남성/여성분들이면 손에서 놓기 힘든 탑노트를 보여줍니다. 오히려 탑노트에서는 비지니스냐 젠틀맨이냐 따지기 이전에 캐주얼한 느낌을 줘요. 파인애플, 베르가못을 중심으로 블랙커런트, 사과가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어느 하나가 유독 튀어서 다른 향들을 해치지도 않고, 과즙이 진득하게 뚝뚝 떨어지는 것마냥 끈적하지도 않고, 전 어벤투스의 탑노트에 굉장히 좋은 점수를 줘요. 그래서 제가 얠 좋아하죠.
근데 탑노트가 날아가면? 베이스 관련해서는 포스팅 후반부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www.parfumglamour.com
밀레지움 임페리얼
이 다음은 매장 직원분도 바다를 연상시킬 거라고 얘기하면서 꺼내주신 밀레지움 임페리얼입니다. 사실 전 얘 이름을 밀레지움까지만 외우고 그 다음을 까먹었댔어요... 포스팅 쓰면서 기억했네요. 임페리얼이라는 이름때문이기도 하고, 금색으로 바른 바틀 덕분에 왠지 막 엄숙하고 웅장할 것같은 느낌인데...
탑노트에서부터 바로 바다가 나타납니다. 바다답게 살짝 소금의 짠 내음도 나구요. 바다라는 건 알겠는데, 파아란 비취빛 넘실대는 물이라기보다는 비 내리기 직전 회색조의 구름 낀 바다같아요. 무슨 바다가 아저씨야... 물이라서 여름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여름에 뿌리고 다기니 적합한 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무거운 물향이라... 너무 물물물해서 오히려 멀리 있는, 사진으로 보는 2차원 바다에 가깝습니다. 어울리기 쉽지 않겠다 싶어요.
그럼 구름 낀 바다가 지나가면? 얘 베이스 이야기 역시 후반부로 미뤄집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www.kishperfume.com
실버 마운틴 워터
베이스 얘기들을 다 뒤로 제끼니 한결 쓰기 편하네요! 벌써 마지막인 실버 마운틴 워터로 왔습니다. 까만색이나 금색으로 장식한 위의 두 향수들에 반해, 특이한 장식 없이 흰색 일색인 바틀이 참 깨끗해 보이지요. 기껏 다른 색이라 해봐야 은색인데, '실버' 마운틴 워터란 이름에 맞네요.
깨끗한 바틀만큼이나 향도 깨끗합니다. 가벼워요. 가벼워서 무난해요. 봄 느낌 나는 탑노트예요. 아 물론 연상은 봄이지만, 실제로는 무난함의 장점을 내세워 사시사철 커버할 수 있습니다. 향 자체가 은은하니 향수에 거부감 가진 사람들이라도 곧잘 쓸 수 있을 것같습니다. 어벤투스나 실버 마운틴이나 둘 다 프래그런스 노트 보면 탑에 시트러스며 베르가못이 들어가지만, 실버 쪽이 훨씬 부담이 덜해요. 실버 마운틴 워터는 캐주얼도 무난무난, 정장도 무난무난하게 소화할 향입니다.
...근데 이 무난이라는 글자가 양날의 칼이라, 제 값 다 주고 살 향인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크리드 맘에 안 들어하는 포인트! 10만 원 넘게 주고 사는 향수라기엔... 물론 은은한 향이 만들기 힘들다고는 하지만요, 왠지 빈정이 상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미루고 미뤄둔 베이스 이야긴데요... 셋 다 베이스로 갈수록 애매하게... 다 아저씨 스킨 향이 됩니다. 탑노트로는 각자 포지션이 엄청 뚜렷해서 곧바로 구분이 가능한데, 미들 베이스로 넘어갈수록 그냥 다 아저씨입니다. 오빠였던 어벤투스도, 구름 낀 바다의 밀레지움도, 산들바람 봄같은 실버 마운틴도 전부 다요! 밀레지움이 제일 쓴 아저씨같고, 어벤투스가 중간, 실버 마운틴 워터가 그나마 좀 덜 쓴 아저씨라는 정도로 구분 가능해요. 뭐가 어떻든 아저씨 냄새로 바뀌긴 합니다만.
프래그런스 노트에서 셋이 중복인 건 머스크밖에 없는데, 머스크 때문일까요? 근데 저 머스크 안 싫어하는데!?!? 아니 그 많은 뽀송한 머스크를 두고 왜!? 아무튼 알 수 없습니다. 200년 넘는 조향 역사가 일구어낸 아저씨인가봅니다.
한 줄 요약: 가볍고 무난한 것부터 순서대로, 실버 마운틴 워터>어벤투스>밀레지움 임페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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