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rk Knight] Chapter 1 번역 (2) 오리짓

 그는 그 여정의 시작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짚어낼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레이첼 도스와 함께 정원에서 놀다가 우물로 떨어져 막힌 벽을 부수는 바람에 뒤편 동굴에 살던 수천 마리의 박쥐가 풀려났던 그 때였을까?
 고난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곧바로 토머스 웨인이 줄을 타고 내려왔고, 힘센 팔로 아들을 끌어안아 다시 햇빛 아래로 데려갔으니까.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춥고 어두운 곳에서 홀로 그를 둘러싸고 퍼덕이는 괴물들을 마주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못 되었다. 어떤 아이라도 마음에 상처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최악은 아니었다. 최악의 사태는 브루스가 부모님과 함께 오페라 공연을 본 후 뒷골목을 걷던 그날 밤 일어났다. 노상강도가 브루스의 부모님을 살해한 것이다.
 두 번 방아쇠를 당기자 ―탕, 탕― 어머니의 진주 목걸이는 피로 물든 채 배수로로 흩어졌고 아버지는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벌린 채 그녀 옆으로 쓰러졌다. 브루스는 노상강도가 보도로 도망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인생이 완전히 뒤집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가 정말 시작이었을까? 그렇겠지. 분명히, 부모님이 쓰러지시던 순간 무언가가 태어났고 브루스 웨인은 ―그게 누구였든, 어떤 사람이었건 간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순간순간들이 웨인 가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변화에 박차를 가했다.
 충동적으로 고담 시를 떠나버렸을 때. 카르마인 팔코네를 맞닥뜨린 탓에 멍들고 피를 뚝뚝 흘리는 신세가 된 그는 썩어가는 부두의 널판을 가로질러 달렸다. 얼굴을 때리던 찬 안개, 코를 찌르던 부패한 생선 냄새, 그리고 선미에서 길게 이어진 쇠사슬을 잡고 뛰어 올라탄 녹슨 화물선, 이 모든 것이 문명의 급소를 깊이 파고들어가는 모험담의 시작이었다. 그는 분노를 못 이겨 동료를 사냥하는 광인들, 도둑, 사디스트, 살인자들을 만나, 그들 사이에 뒤섞였다. 그들을 이해하고, 종국에는 그들과 하나가 되고 싶었다...
 라스 알 굴과의 만남. 감방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브루스는 집단 난투를 벌인 끝에 다른 죄수들을 곤죽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독방에 갇힌 신세였다. 그때 키 크고 엄숙한 남자가 나타나 그에게 석방뿐만 아니라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브루스는 이를 받아들였고, 이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의 시종이 되었다...
 사원에서의 나날. 라스는 그의 주인이자 구세주였다. 히말라야 산맥 높이 위치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원에서, 브루스는 심리적인 훈육과 육체적인 훈련을 받아 싸움이라면 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훈련은 가혹했고, 무자비했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았기에 종종 죽음까지도 내몰렸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가히 초인이라 불릴 만 했고 그 중에서도 브루스는 특히 우수했다. 라스가 인류를 지키기 위해 고담 시의 시민들을 시작으로 수백 만 명을 학살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브루스는 라스의 시종으로 살겠노라고 상상하곤 했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를 도와주었다. 소꿉친구이자 사랑하는 레이첼 도스의 이상주의는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루시우스 폭스는 그가 필요로 하는 기술과 장비들을 지원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이자 영원한 조언자인 알프레드는 물론이고, 그의 활동을 재정적으로 책임진 웨인 가문의 막대한 재산도 도움이 되었다.
 그 가산 덕택에 어린 브루스는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12살이 되기까지, 그는 지역에서 제일가는 사립학교에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의 교장이 알프레드를 불러 "이 아이에게 더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전했고, 그는 여러 가정교사들과 공부하게 되었다. 과학 분야라면 그는 언제나 탁월했다. 외국어 역시 나무랄 것 없었다. 역사 과목은 그럭저럭. 사회 과학 분야도 괜찮았다. 인문학은 영 아니었지만, 희곡만은 예외였다. 그는 희곡 작품 읽기를 좋아했다. 그는 알프레드가 어렸을 적 영국에서 배우 생활을 했었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특히 공연 효과를 연출하는 방법이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가 14살이 되었을 때, 알프레드는 곧잘 저택의 커다란 창문을 통해 어린 브루스가 정원을 내달리거나, 나무를 타고 올라가 가볍게 뛰어내리거나, 가끔은 돌을 힘껏 멀리 던지기도 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비록 그는 어떤 학교에도 등록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브루스는 청소년을 위한 지역 축구 리그가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팀에 들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두어 번 시도한 끝에 그만두고 말았다. "아마 팀에 어울리는 타입이 아닌가 봐요." 그렇게 알프레드에게 말한 뒤, 그는 두 번 다시 그 화제를 꺼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스포츠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16살이 되자 그는 알프레드에게 스키를 타러 가도 되는지 물었다. 알프레드는 스키 슬로프 가까이로 가본 적이 없었지만, 몇 번 전화를 걸어 버몬트에 있는 리조트가 좋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리조트의 예약까지 마친 다음 스키 장비를 샀다. 리조트는 훌륭한 만큼 값비쌌다.
 그들은 차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지만, 그건 실수였다. 격한 눈보라가 내리치는 가운데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별로 빠르지도 않을뿐더러 위험한 일이었다. 그들은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안내 데스크의 예쁜 아가씨는 시간이 늦은 탓에 스키 리프트는 영업을 마쳤고, 6시가 되어야 다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바삭거리는 불 주변에 친절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라운지는 열려있었다. 알프레드는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했지만, 브루스는 꽁무니를 뺐다. 피곤하다는 이유였다. 알프레드는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한 뒤 라운지로 가서 따뜻한 과실주를 마시며 베고니아 꽃을 키우는 것이 취미라는 은퇴한 선생님과 한담을 나누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알프레드는 잠들기 전에 브루스를 살펴보러 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를 맞아준 것은 텅 빈 방과 인기척 없는 침대였다.
 "진작 알아챘어야 하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참도 피곤하셨겠지!"
 
 브루스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던 남자에게서 설피를 샀다. 신발을 신고, 스키를 어깨에 멘 다음 그는 전문가용 슬로프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바람에 날려서 허리 높이까지 쌓인 눈에 미끄러지고 넘어져가며, 느리고 지루한 행군이 이어졌다. 자정이 지났을 즈음에야 브루스는 산의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달빛이 눈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카드, 숨 막히게 아름다운 밤. 브루스는 이 모든 것을 흘끗 볼 뿐이었다. 그에게는 임무가 있었다. 그는 설피를 벗고 스키를 신은 뒤, 코스 꼭대기에 우뚝 섰다. 누군가가 그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야간 경비원이라도 되나 보지. 브루스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 손 인사를 보낸 뒤 그대로 땅을 박찼다.
 눈송이가 그의 뺨을 찔렀고, 스키가 슉슉 소리를 내며 눈가루를 갈랐다. 눈길이 그를 맞이하려는 듯 급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그는 세계가 뒤집히는 광경을 즐기고 있었다...
 경비원은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구조대를 불렀고, 구조대에서 두 명의 의사가 달려와 얕은 협곡의 밑바닥에서 의식을 잃고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브루스를 찾아냈다. 그의 스키 한 짝은 두 동강이 난 채였고 다른 짝은 그의 다리를 이상한 각도로 비틀고 있었다.
 한 시간 후, 알프레드는 관리인 주택의 의무실에서 브루스를 발견했다. 그는 침대에 기댄 채 다리에 깁스를 하고 이마에는 온통 흰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아주 기분 좋게 쉬셨겠습니다." 알프레드가 말했다.
 "돌아오지 못할까봐 무서웠어요." 브루스가 답했다. "머리가 좀 울려요. 스키는 다음 기회로 하죠?"
 알프레드는 주변 마을에서 불려온 의사와 상의하면서 브루스의 다리가 부러지긴 했지만 산산 조각난 것은 아니며, 약간의 뇌진탕이 있고, 눈 위쪽의 상처가 깊어 열한 바늘이나 꿰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타박상은 아주 많았다. 하지만 의사는 알프레드가 적절한 교통수단을 준비한다면, 브루스를 고담으로 데려가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적절한 교통수단"이란 커다란 쌍 로우터를 가진 시코르스키 헬리콥터였다. 헬리콥터는 웨인 저택의 옆에 있는 평지에 착륙했다. 그날 밤 브루스는 제 집 침대에서 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붕대와 깁스를 풀 수 있었고, 타박상도 나았다. 웨인 가문 전담의사가 와서 브루스가 완치되었음을 확인해주었다.
 그 이후로 브루스는 절대 여가 시간을 보낸답시고 스키를 타지는 않았다. 하지만 라스 알 굴의 사원에서 그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야 했고, 눈 붙일 새도 없이 사흘 밤낮을 꼬박 눈 덮인 산맥을 달렸다. 한 번은 라스가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빙상을 뛰어내리라고 시키면서 그를 시험하기도 했다. 바닥에는 뾰족한 바위들이 널려있었다.
 브루스의 흥미는 다른 스포츠로 옮겨갔다. 브루스는 올림픽 대회에서 쓰는 체조 기구 세트를 사들였고, 그 기구들을 어떻게 쓰는지 배우느라 그 해 여름을 다 보냈다. 그는 정원 뒤편으로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을 가지고 있었다. 몇 달 동안 그는 아침 먹기 전 수영장을 몇 바퀴 돌곤 했다. 역기를 들었고, 달리기도 했다. 사이클도 탔다. 하지만 잘하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활을 쏴서 과녁을 맞히는 법이 없었고, 그만그만한 스케이터 이상의 실력을 내지도 못했다.
 가끔씩 레이첼이 저택에 와서 같이 수영을 하거나, 트램폴린 위에서 폴짝폴짝 뛰거나, 아니면 그저 시간을 보내며 놀았다. 브루스도 이를 즐기는 듯 보였지만, 17살이 되자 그는 갑작스레 떠나버렸다. 전화 한 통 남기지 않고.
 그 이후로도 방문은 이어졌지만, 브루스가 부모님을 살해한 남자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레이첼과 말싸움을 한 다음 고담 항을 떠나는 녹슨 배에 올라탄 뒤, 그것도 끊기고 말았다. 그는 수년간 떠나있었다. 다시 나타났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후였다. 그러나 알프레드와 레이첼만이 그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