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rk Knight] Chapter 1 번역 (1) 오리짓

이건 추억이자 악몽이기도 했다...
 
 선도차까지 도달한 배트맨은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에 고민하듯 잠시간 동요하다가, 이내 전략을 짜느라 시간을 허비할만한 여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지금 당장 본능이 일러주는 대로 행동해야만 했다.
 아마 몇 초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열차 가장자리를 붙들고 뒤쪽으로 다리를 넘겼다. 그의 부츠가 안전유리로 된 차창을 찼고, 창틀 쪽부터 창문을 두들겼다. 창문이 좌석 어딘가로 떨어지자, 배트맨은 미끄러지듯 빈 창틀을 통해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몸을 바닥 쪽으로 바짝 굽혀 착지했고 열차의 전면을 마주했다. 그가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에 놀랐을 때는 이미 돌아볼 시간조차 없이 뒤에서 공격당해, 팔이 붙잡힌 후였다. 그 그림자의 주인은 라스 알 굴의 부하였다. 그는 열차의 후문 쪽으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극초단파 송신기가 살짝 진동하더니 통로를 차단했다. 그 뒤로 라스 알 굴이 서있었다.
 "용케 아직 살아있군." 라스 알 굴이 입을 열었다.
 "보다시피. 아직 늦지 않았다, 라스. 더 피를 볼 필요는 없잖아."
 "아니. 틀렸어, 브루스. 피를 볼 필요라면 차고 넘치지."
 "내가 막을 거다."
 "그렇게는 못 할 텐데. 막고 싶으면 날 죽여야 한다. 하지만 넌 그러지 못해."
 "확신하나?"
 "물론. 너로서는 아버지가 죽는 걸 또다시 보고 싶지는 않을 테지." 라스는 기계의 언저리를 돌며 지팡이에서 검을 빼들었다. "하지만 난 내 아이들의 죽음이라면 많이 봐왔다. 한 명이 더 죽는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지."
라스는 한 손에는 검을, 다른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서 다가왔다. 그는 검을 드는 체 하다 느닷없이 지팡이를 배트맨의 머리에 대고 휘둘렀다. 그러나 배트맨이 건틀릿으로 공격을 받은 뒤 팔을 비틀었기에, 지팡이는 그의 어깨 위로 헛돌았다.
 이번에는 라스의 검이 배트맨의 가슴을 찔렀다. 배트맨이 휙 돌자 검이 슈트를 스치며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그때 라스가 힘껏 걷어찼다. 첫 번은 회피했지만 라스는 다시 배트맨의 허리께를 쳤다. 배트맨이 자세를 바로한답시고 비틀거리는 새, 라스의 검이 호를 그리며 배트맨의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그는 손목을 겹쳐 건틀릿으로 검을 막았다.
 "시시하군." 라스가 외쳤다. "새로운 건 없나?"
 "이건 어떨까?" 배트맨이 반대편으로 팔을 확 잡아당기자 검이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이어서 배트맨이 오른손으로 라스 알 굴의 가슴을 쳤고, 그는 비틀거리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배트맨은 좌석을 뛰어넘으며 라스를 지나쳐 열차 조종실로 향했다.
 그는 전방 창문을 통해 앞에 어렴풋이 보이는 웨인 타워를 찾았다. 그는 브레이크 레버를 그러쥐었지만, 레버를 뒤로 당기기 전에 라스가 먼저 지팡이로 기계 장치를 마구 내리쳤다. 배트맨이 반응하기도 전에 라스는 꽉 쥔 주먹으로 배트맨의 머리를 쳤고, 바람막이 창에 박았다. 라스가 다시 치자 배트맨이 바닥을 굴렀다. 라스는 그 위에 올라타 배트맨의 목을 졸랐다. 그의 엄지가 배트맨의 목청을 누르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브루스... 너도 나만큼이나 이 도시를 싫어했지. 그런데 지금의 넌 그저 망토를 뒤집어쓴 일반인일 뿐이야. 네가 이 도시의 불의와 싸울 수 없는 이유다... 이 열차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
 "누가 멈추겠다고 했나?"
 그때 열차가 크게 흔들리는 바람에 라스 알 굴은 순간 손에서 힘을 뺐다. 그는 바람막이 창을 통해 뒤틀린 선로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주변 환경을 조심할 줄 모르는군." 배트맨이 덧붙였다. "싸우는 상대만 경계하면 안 되지."
 그는 오른팔의 건틀릿으로 라스 알 굴의 얼굴을 힘껏 밀쳐냈다. 라스가 옆으로 넘어지자 배트맨은 허둥지둥 일어났다. 그는 왼손으로 상대의 머리를 잡았고, 오른손으로는 망토 밑에서 배터랭을 꺼냈다. 그는 머리 위로 높이 무기를 치켜들었다. 간단히 손짓하는 것만으로도 라스 알 굴의 머리에 깊이 박힐 터였다.
 라스는 미소 지었다. "드디어 해야 할 일을 하는 법을 배웠나?"
 배트맨은 바람막이 창을 향해 배터랭을 던졌다.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죽이지는 않아..."
 배트맨은 벨트에서 조그마한 수류탄을 꺼내 열차의 뒷문 쪽으로 던졌다. 요란한 폭발음이 들렸고, 문이 날아갔다.
 "하지만 살려줄 필요도 없지."
 배트맨은 극초단파 송신기의 반대편에서 망토 속으로 주먹을 내찔렀다. 그러자 망토가 뻣뻣해지더니 날개처럼 펼쳐졌다.
 배트맨은 상승 기류를 타고 수백 피트 높이로 날아올랐다. 내려다보니 웨인 타워에서 솟아오르는 불길과 모노레일 열차의 실루엣이 보였다. 남쪽을 보자, 그는 소방차의 붉은 불빛과 함께 멀리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리는 바람 소리와 뒤섞이고 있었다...
 
 브루스 웨인은 눈을 떴다. 잠시간 악몽 같은 기억이 사라지도록 둔 다음,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맨살에 닿는 부드러운 침대 시트의 기분 좋은 감촉을 느꼈다. 그렇게 바닥 위에서 다리를 흔들던 그는 일어서서 창가로 걸어갔다. 동녘이 밝아오는 가운데, 그는 웨인 타워를 향하던 모노레일의 커다란 잔해가 불탄 채 길에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라스 알 굴과의 싸움을 상기시켜주는 유일한 실체였다.
 그로서는, 기나긴 여정의 끝이었다.